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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종환

[도종환#003] 담쟁이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