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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철학담론

[철학담론#004] 루이 알튀세르 : 왜 일할 때 주눅이 들까?

왜 일할 때 주눅이 들까? [ 루이 알튀세르 ]










한줄 담론



『 우리는 일을 할 때 초조하고 불안하다. 항상 주눅이 들어있기에 초조하고 불안하다. 』



『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돈을 받는 것인데 우리는 왜 주눅이 들까?



『 알튀세르 "이데올로기(ideologie)" 』



『 세상사람들의 무의식적 표상(representation)체계 』



『 개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조건들과 맺는 상상적 관계의 표상 』



『 현실적 존재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상 』


『 일관된 생각과행동을 하는건 일관된 표상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


『 표상체계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


『 표상체계를 벗어나면 비난을 받는다. 


『 "이데올로기"가 없는 사회는 없다. 


『 알튀세르라는 구조주의자 :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이데올로기라는 구조 』


『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대올로기 
: 사장이 직원 덜 뽑아서 내가 야근하는 것이다. 


『 여자와 남자의 이대올로기
여자가 정시퇴근 해서 내가 야근하는 것이다. 


『 정시퇴근하는데 왜 주눅이 드는가 

: 우리는 노동자지만 자본가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드리고 있었다. 


『 노동자든, 자본가든, 우리 시대 대부분은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있다. 


『 우리가 일하며 주눅이 드는 이유는, 노동자이면서도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로 내면화된 대가다. 


『 내가 특정한 이데올로기라는 색안경을 쓰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효과를 갖는 물질적 존재이면 

물질적 장치를 통해서 존재한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다) 



『 새로운 삶을 원한다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노력을 미루지 말자 





루이 알튀세르




[인물]


루이 피에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년 10월 16일 ~ 1990년 10월 23일)는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다. 1970년대를 풍미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현대 이데올로기이론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다. 현대의 좌파 정치철학과 과학철학,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문화이론에서 알튀세르의 영향은 지대하지만, 정작 본인의 이론과 지향은 후배들과는 꽤 상이하다.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제자로 유명하며 알튀세르의 제자 또는 후배들은 주로 정치철학자로 자크 랑시에르, 미셸 푸코, 에티엔 발리바르가 유명하다. 프랑스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생애]


알제리 출신으로, 파리의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에서 헤겔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그 곳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프랑스 공산당을 선도하는 이론가였으며 그의 주된 논쟁들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근거에 대한 여러 위협들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위협에는 마르크스주의 사회학과 경제학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경험주의와 유럽의 공산당들을 분열시키기 시작한 휴머니즘 사회주의 및 민주-사회주의가 포함된다. 그는 초기 마르크스의 소외론, 인간주의와 후기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사이에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반인간주의, 반경제주의, 반경험주의와 반주체주의를 주장하였다.


프랑스 구조주의의 다른 부류와 결코 간단히 얽히는 우호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알튀세르는 흔히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린다. 흔히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자크 라캉의 상상계 논의를 반영했고 라캉의 그것에 미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스피노자의 논의가 더 강하게 반영되어있다. 그의 저작에는 '자본을 읽자', '마르크스를 위하여' 등이 있다.




[알튀세르의 권력이론]



알튀세르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의 형성과정을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이데올로기에대한 맑스주의 이론과의 연관성 속에서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거울단계이론을 사용하였다. 그의 이론에서 모든 사회는 사회생활의 물질적 수단의 재생산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혹은 주체를 재생산하기 위한 기제를 발전시켜야한다. 그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개인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존재조건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를 드러낸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상대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알게 하여 개인이 사회적 규범 내에서 표출할 수 없는 욕망이 실현되고 있다는 착각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개인은 그 자신을 자유로운 개인으로 상상하게 되며 주체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구조의 생산물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사회구성체론]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의 관점에서 사회구성체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닌 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층위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 층위들 각각의 실천은 상대적인 모순이나 불일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러한 불일치에도 상관없이 어떻게 이 층위들이 하나의 전체라는 사회구조 속에 스스로를 적응하며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지에 의문을 가졌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재구성한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구성체가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차원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본다. 즉, 사회구성체가 존재하고 생산이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생산조건을 재생산해야 하고, 사회구성체는 생산력(생산도구, 노동력)과 생산관계(도구, 자본의 소유관계)를 재생산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생산력의 재생산은 노동력의 기술 재생산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존 질서의 규칙들에 대한 노동력의 복종심 재생산도 가르친다는 것이다. 즉,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심이나 그 실행에 대한 지배력을 보장하는 형태로 가르친다.




[억압적 국가 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알튀세르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법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 의해 보장된다고 본다.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다시 말해 한편으론 억압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이데올로기적인 국가 기구 내에서 국가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보장된다. 억압적 국가 기구(repressive state apparatus)는 경찰, 법정, 감옥, 군대 등을 말하며, 지배 계급에게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지배를 보장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는 종교, 교육, 가족, 법, 정치, 노동조합,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말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의 대부분은 사적 영역의 일부다. 또한 알튀세르는 사회구조를 경제적 층위, 정치적 층위, 이념적 층위로 구분한다. 토대와 관련해 볼 때 상부구조는 상대적인 자율성을 갖고 있다. 알튀세르의 모순 개념은 중층 결정(overdetermination)된 모순으로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서 차용되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알튀세르는 각기 다른 실천들을 포용하고 사회구성체를 유지하는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를 설명했다. 이를 위해 알튀세르는 물질적·경제적 요인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마르크스 이데올로기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론을 정립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알튀세르는 자신의 이데올로기 이론을 이데올로기의 구조와 기능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데올로기의 구조에 대한 정의에서 "이데올로기는 개인이 실제 조건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를 재현한다"라고 파악한다. 알튀세르는 개인이 실제 현실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에서 이데올로기적 타자와 은유적 동일시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호명]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알튀세르는 호명(interpellate)의 개념을 상정한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주체로서 구체적인 개인을 구성한다. 이름으로 호칭되든지, 악수를 하든지 등의 행위를 통해 독특한 주체로 인정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각 개인들에게 질문을 통해 주체들을 모집하거나 개인들을 주체들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일단 잉태되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특수한 가족 이데올로기형 내에서 하나의 주체로 정해진다. 이때 호명의 메커니즘은 주체가 기존의 사회 질서로 편입되는 상상적·상징적 단계의 결합을 말한다. 문장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호명된 개인은 스스로를 발화의 주어(subject of speech)와 동일시하고 문장 구조가 규정해 주는 주체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주체]


주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앞서 지적한 언어와 대중매체는 주체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개인이 영화나 광고를 접할 때,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나 광고 내용의 소구 대상이 바로 자신임을 느끼고 소구된 내용이 마련해 주는 대로 살아가는 소비 주체로서 주체성에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개인이 스스로를 주체로 경험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고 행위하는 방식을 사회 현실과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내면화함으로써 사회의 지배 가치나 행위 양식 등에 무의식적으로 편입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라는 것도 호명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스스로 자연스럽게 믿는 상상적인 관계인 것이다.




[구조의 담지자]


호명과 상상적 관계와 같은 개념들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구조주의적 관점이 접목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주관성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무의식적인 것이며, 특정 개인들에 의해 체험되는 방식을 넘어선다. 이데올로기의 본질적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구조를 통해서 가능할 뿐이다. 고립된 이미지나 표상들은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는다. 


그 이미지나 표상들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그것들의 체계이며, 그것들의 조합 양식 및 성향이다. 이미지나 표상들의 의미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들의 구조다(한상진 외 역, 1999, 211쪽). 따라서 알튀세르는 주체란 자율적이고 자기 충족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는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는 주체를 단지 구조의 담지자로 간주한다.




[평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상대적 자율성의 혼합으로 압축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 및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구별에 착안해, 선진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작동 중인 특정 사회 질서, 특정한 생산관계의 집합, 권력이라고 느껴짐이 없는 특수한 권력의 행사 등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묘한 메커니즘을 이론화하려고 했다.


특히, 알튀세르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법-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 의해 보장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에 의한 사회질서의 재생산, 즉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개념은 대중문화 텍스트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문제틀을 제시해 주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한편으론 대중문화의 텍스트가 호명을 통해 독자를 주체로 구성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주체 구성 과정이 복잡하면서도 모순적이라는 후기구조주의 연구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Althusser, L.(1971년) Freud and Lacan &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Lenin and Philosophy. trans. Brewster, Be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Althusser, L.(1991년) On Marx and Freud, trans. Montag, Warren, Rethinking Marxism 4: 1, pp.17~30.

Althusser, L.(1992년) Contradiction and Overdetermination, For Marx, trans. Brewster, Ben. London: NLB. pp.87~128.

[네이버 지식백과] 루이 알튀세르 (문화 연구자, 2013. 2. 25., 정재철)

한입 매일 철학, 황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