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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철학담론

[철학담론#002] 비트켄슈타인 :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을까?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을까? [ 비트켄슈타인 ]










한줄 담론




『 비트켄슈타인 "언어게임" 



『 나는 규칙을 따를때 선택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따른다. 』



『 우리는 마찰이 없기 때문에 어떤의미에서는 이상적인 조건의 미끄러운 얼음위에 올라섰지만, 

동시에 바로 그 이유로인해 걸을 수 없게 된것이다. 

우리는 걷고싶다. 따라서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땅으로 돌아가라. 』



『 말을 하는 행위가 게임,놀이라면 이 세상은 거대한 언어의 게임장,놀이터이고 거기에는 모두가 합의한 규칙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공공성이 있다. 



『 "언어는 환경, 문맥,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고 사용과 실천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게임,놀이이다" 



『 말을 하는 행위가 게임,놀이라면 이 세상은 거대한 언어의 게임장,놀이터이고 거기에는 모두가 합의한 규칙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공공성이 있다. 



『 언어는 고정된 본질, 개념, 이념, 생각은 없고 의사소통의 현장에서 구현되는 상대적인 것이다. 



『  "단어의미(word-meaning)"와 "문장의미 (sentence-meaning)"에서 모두 언어게임이 벌어진다. 



『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 우리 모두의 언어 게임이 아닐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인물]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독일어: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년 4월 26일 ~ 1951년 4월 29일)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이며, 논리학, 수학 철학, 심리 철학, 언어 철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는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분석 철학을 대표하는 인재로도 알려져 있다. 20세기 말 한 철학 포럼이 정리한 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와 《철학 탐구》는 상위 5위권에 모두 선정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후일 인문학과 사회 과학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었고 분석 철학자로서는 예외로 예술가들에게 전파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종종 천재를 가리키는 낱말로 쓰인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로 대표되는 전기와 《철학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로 나뉜다. 《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난 전기 사상이 명제에 사용된 낱말의 은유다운 관계를 분석하여 기존 철학에서 잘못된 개념 탓에 빚어진 논리에 상충하는 점을 지목하는 데 집중된 반면, 후기 사상은 언어-놀이에서 상호 변환되는 자연 언어가 논리에 부합한 구조로 정형화한 언어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데 중심이 놓여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는 주어진 언어-놀이 안에서 그 단어들이 사용될 때 가장 잘 이해된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다.





[삶]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에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고 어머니는 레오폴디네 비트겐슈타인이다. 루트비히는 8남매 가운데 막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헤르만 크리스티안과 파니 비트겐슈타인은 유대인이었으나 개신교로 개종하였고 1850년대에 작센에서 빈으로 이주하였다. 할머니 파니 비트겐슈타인은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인 요제프 요하임의 사촌이다.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제철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1880년대 후반 무렵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독점하는 제철 사업가이자 세계에서 뛰어난 부자가 되었다. 카를 비트겐슈타인의 자산은 부동산, 주식, 귀금속, 외화 형태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북미 등지에 분산되어 있었다. 재산이 분산되어 있었기에 막대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뒤에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어머니인 레오폴디네 칼무스는 유대인 아버지와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노벨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이모이기도 하다. 이런 가족력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은 개신교와 가톨릭(천주교)에서 세례받았는데 다른 형제들은 침례교를 신봉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할머니의 신앙을 좇아 가톨릭(천주교)에서 세례받았다.




[철학]



논리 - 철학 논고


《논리-철학 논고》(라틴어: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을 대표하는 저서이다. 초판의 서문은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버트런드 러셀이 썼다. 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본문을 썼으며 일정량이 모이면 러셀과 무어에게 보냈고 1918년 완성하였다.[18] 초판의 출간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22년에 이루어졌다. 흔히 《논고》로 줄여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기존의 철학에서 적용하는 철학적 문제란 언어의 논리를 잘못 적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나에겐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논고》를 집필하던 시점의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기존의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을 제시한다. 그림 이론을 구상하게 된 까닭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재판에서 모형들이 사용된 것을 본 것 때문이었다. 그림 이론이란 언어는 세계를, 명제는 사실을, 이름은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것들이 실제 대응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일기장에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연습 삼아 조립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그림 이론은 기존의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학에서 신이나 자아, 도덕과 같은 것들은 실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어서 뜻(Sinn)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같은 것은 실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끝맺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명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증명할 수 없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구태여 증명하려 하여 무가치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함께 재직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와 자신의 그림 이론에 대해 토론을 하던 가운데 잘못을 깨달았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론에 스라파가 반론하면서 손가락 끝으로 목부분을 밀어 올렸다. 스라파의 행동은 이탈리아에서 의문이나 조소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제스처였다. 순간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주장했던 언어의 논리학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언어의 의미는 결코 한 가지로 고착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였으나 출판하지는 않았다. 《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사후에 남겨진 초고를 합하여 출판되었다.


《철학적 탐구》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을 상당부분 수정하게 된다. 초기의 그림 이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 이론을 포함한 기존에 있었던 사물과 언어가 일치한다는 주장을 반대하였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가 있기 전에 생활 양식이 있다. 또한, 언어는 그 '뜻'이 아니라 '사용' 에 본질이 있으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삶의 형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는 하나의 공통된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것을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s) 이라고 불렀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놀이에 비유했는데, 줄넘기 놀이, 술래잡기, 가위바위보 등의 '놀이'에서도 어떤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족처럼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는 뜻이다. 대니얼 솔로브는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접근을 현대형 프라이버시 개념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명료하고 논리적인 이상적인 상태의 언어를 추구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러한 철학은 옥스퍼드학파라고도 불리는 일상언어학파가 잇게 된다.






[저서]



1889-1921 : 《논리 철학 논고》(독일어: 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 Annalen der Naturphilosophie, 14 ,1921년), 《쪽지》


1922-1933 : 〈철학에 대한 견해〉(독일어: Philosophische Bemerkungen), 러쉬 리즈(Rush Rhees) 편집,1964년)


1933-1935 : 《청색 책, 갈색 책》(영어: The Blue and Brown Books, 1958년), 케임브리지 재학시절인 1933년 - 1935년 사이에 영어로 쓰인 노트를 사후에 정리


1936-1949 : 《철학적 탐구》(독일어: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1953년)


1949-1951 : 〈확실성에 관하여〉(영어: On Certainty) - 행동이론에 영향을 받은 철학적 단상들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독일어: Bemerkungen über die Grundlagen der Mathematik, G.H. von Wright, R. Rhees, and G.E.M. Anscombe 등이 사후에 편집, 1956년) - 1937년 - 1944년 사이의 논리와 수학에 대한 철학 작업 모음


〈심리학의 철학에 대한 견해〉(독일어: Bemerk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Psychologie, G.E.M. Anscombe and G.H. von Wright 등이 사후에 편집, 1980년)


〈색상에 대한 견해〉(독일어: Bemerkungen über die Farben, G.E.M. Anscombe 이 사후에 편집,1977년)


〈문화와 가치〉(영어: Culture and Value, 음악, 종교 등 다양한 문화적 사안에 대한 개인적 견해 모음집


《비트겐슈타인 선집(7권)》, 이영철 역, 책세상, 2006년, ISBN 89-7013-556-1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년, ISBN 978-89-5733-489-8


한입 매일 철학, 황진규